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 사무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8
1101호
(우) 03131

전화: +82 (0) 2-745-2648
팩스: +82 (0) 2-745-6684

e-mail: info@fes-korea.org
www.fes-korea.org

 

Friedrich Ebert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 -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재단!

 

소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풍부한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정치 재단으로 1925년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재단의 이름이 말해주듯 설립 과정과 재단의 임무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일 최초의 대통령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정치적 유산에 따르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활동은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이자 가치인 자유, 정의, 연대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사회민주주의 및 자유 노동조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에버트 재단은 비영리 기구로서 자율적이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

  • 모든 시민이 출신, 성별, 종교와 무관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차원에서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누리며,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로운 사회
  • 활력 있고 탄탄한 민주주의, 모두가 양질의 일자리를 가지는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 더 많은 교육과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빈곤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삶에서 생기는 어려움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복지국가
  • 유럽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사회 진보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국가


활동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시민사회 강화를 위한 정치교육: 재단이 독일에서 실시하는 정치교육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정치와 노동조합, 시민사회 활동에 성공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 역량 강화, 정보 제공, 자격 부여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재단은 사회적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시민 참여를 독려한다.
  • 싱크 탱크: 재단은 경제, 사회, 교육 정책의 핵심 사안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주요 문제에 관해 전략을 수립한다. 또한 싱크 탱크, 학계, 정치 활동가들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여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 및 사회 질서를 개별 국가, 유럽, 전 세계 차원에서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관한 대중적 담론을 만들어 낸다.
  • 국제 협력: 재단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설립한 사무소들을 통해 평화적 협력과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을 지원하고, 민주적, 사회적, 헌법적 구조의 건설과 강화를 촉진하며, 민주적 노동조합과 탄탄한 시민사회 건설에 앞장 선다. 또한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 경쟁력이라는 가치를 유럽 통합 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 재능있는 청년 지원: 재단은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 또는 이주 가정 출신의 대학생과 박사학위 학생 과정 학생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교육 민주주의 향상에 기여한다.
  •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집단적 기억: 재단은 기록물 보관소, 도서관, 현대사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의 역사적 뿌리를 살아 숨쉬게 하며, 사회정치적, 역사적 연구를 지원한다.

 

프리드리히 에버트(1871-1925)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1919년 -1925년). 그는 의회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지했으며 국민 모두를 독일 국민의 대통령으로 여기고 사회적 균형과 타협에 초점을 둔 정치에 전념하였다.

1912년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제국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선거는 사회민주당이 거둔 최고의 승리이며 이를 통하여 사회민주당은 가장 큰 의회 정당이 되었다. 1913년 사회민주당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전쟁 자금 문제로 의견이 엇갈린 당 진영을 단결시키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당의 분열까지 이르렀다.

독일 군주제의 종말에 이어 1918년 11월 혁명의 과정에서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임시 총리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러시아의 소비에트(평의회)를 본뜬 노동위원회 체제의 설립을 막았을 뿐 아니라 민주적인 독일의 국민의회라는 선거를 시행시켰다. 이는 사회민주당 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향한 부정할 수 없는 헌신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유와 다원주의에 기반한 독일 사회의 질서 구축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191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연합 정부의 붕괴, 경제 상황 악화 그리고 정치적 위기 등의 문제로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독일의 새로운 의회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그의 의지는 확실하였다. 때문에 그는 몇몇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으며, 비방과 모함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라는 그의 주장은 변하지 않고 확고히 지켜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25년 임종 후 즉시 유언에 따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이 설립되었고,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정치적 유산과 신념은 오늘날까지 재단의 이념에 깊히 뿌리박혀 유지되고 있다.